[an error occurred while processing this directive]

WHAT OUR STUDENTS SAY

박광우

Admitted School: Columbia University
미국에 온지도 어언 2년 반, 나는 이제 미국의 최고 대학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콜럼비아 대학교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쉽지만은 않았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에겐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친형의 도움으로 미국에 오기 까지 어려움이 없었지만, 혼자서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사먹는 것도 버거웠다. 나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갔고 어학원의 한인 친구들과만 어울리게 되었다. 2년 간 유학생활을 결정 했었던 나는 결국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될 수도 있었던 뉴욕 여행. 그곳에서 아는 지인을 통해서 지금의 에릭 과장님을 알게되었다. 그 후로 나는 주말마다 뉴욕으로 놀러오게 되었고 소소한 일상의 변화에 재미를 느끼며 뉴욕에서 더 지내기로 결정하였다. 뉴욕에서 반 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도시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고 에릭 과장님을 통해 브릿지 칼리지로 진학하게 되었다.

나 역시 미국의 교육 시스템에 관심을 느끼던 차라 나의 첫번째 미국 대학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결심했던건 3월 초, 다음 학기의 시작은 4월이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심적으로 초조했던 나를 안심시켜 주었던 것은 유니프렙 직원분들과 시스템이였다. 대학에 지원하기 위한 에세이는 튜터를 통해 완벽하게 준비되었고 각종 서류들의 준비 역시 빠짐없이 준비되었다. 또한 박지영 실장님께서는 항상 친근한 누나의 이미지로 다가와 주변 학생들과의 교우를 다지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는 첫 합격장과 장학금 증서를 받았던 그 날 지사장님, 실장님 주임님을 비롯한 직원 일동분들과 친구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던 것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어간다. 하지만 유니프렙의 동무은 단지 학교를 들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의 첫 대학을 들어간 나에게 문제는 영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대학들은 한국의 대학들과는 다르게 전공에 필요하지 않은 필수 교양 수업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었고, 관심이 없었던 분야들까지 수강해야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가능하다면 좋은 대학으로의 편입을 꿈꾸고 있던 나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하나하나의 수업들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콜럼비아 대학원에 재학중이시던 유니프렙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나는 마지막 네번째 학기까지 전부 A를 받으며 GPA 4.0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학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편입 지원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동시에 토플까지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일년동안 열심히 작문을 했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들의 주제는 생각보다 까다로웠고 유니프렙 선생님들과 주제, 흐름, 구성까지 철저하게 짜며 에세이를 완성지었다. 에세이만큼 힘든 부분은 토플이었다. 그 전에 한번도 영어 시험을 쳐본 적이 없었기에 시험 자체가 나에게 까다롭게 다가왔다. 시간도 지원까지 두 달 남짓 남은 상황, 서둘러 다른 선생님과 수업을 진행 하였고 그 끝에 96점이라는 점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버클리 대학의 마지막 학기와 지원 시기가 맞물리며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유니프렙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나의 부족한 많은 부분들을 메꿀 수 있었다. 합격장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약 3달. 기다림의 끝에 지친 나에게 실장님과 주임님은 붙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결국 그 기다림의 끝은 기쁨으로 가득했다.

지난 일 년이 약간 넘는 시간동안 항상 응원해주시고 얻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좋은 결과를 얻도록 도와주신 유니프렙 사장님, 실장님, 주임님, 선생님들 그리고 많은 직원분께 깊은 감사드린다.